재미있게 본 영화라도 다시 보지는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을 아는 것이 흥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읽던 중 ‘책의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거나, ‘책의 표현이 아름다웠는데 영화가 그것보단 잘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를 봤다. 이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책의 내용을 어떻게 영화로 담아냈는지 비교해 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읽은 책이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간결한 문장과 엄청난 흡입력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책의 내용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을 멈춘 살인자가 자신의 딸을 다른 살인자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같지만 책, 영화 일반판, 감독판 모두 결말이 다르다. 감독은 “원작 소설과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감독판을 봤다.
살인자의 관점에서 일기의 형식처럼 빠르게 진행이 되어서 영화로 어떻게 표현을 했을지 궁금했다. 책 속의 문장은 영화에서 내레이션으로 표현이 되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만 읽고 영화를 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를 하면서 봤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보이는 살인자였던 자가 기억을 잃어가면 어떻게 될까, 살인자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살인자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보니 더욱 긴박감이 있었다.
나의 본래 특성으로 아는 내용으로 흘러가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고, 지루하던 차에 책과는 다른 내용에 놀라고 빠져서 봤다. 세 버전 모두 반전의 내용도 다르다. 책의 장점을 잘 살려 원작을 썼고, 영화에선 영화의 장점을 잘 살려서 담아냈다. 각각 다른 흥미 포인트가 있어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의외로 줄거리가 같아도 재미있게 영화를 봤고, 오히려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에서는 충격을 받으면서 본 것이 새로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책과 영화를 읽고 보면서 비교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의 사진 아래는 책과 감독판을 직접 보고 일반판의 결말은 블로그에서 보고 느낀 점을 썼습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보고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3가지 버전 모두 결말이 다르다. 알츠하이머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기억을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할 수도 있고, 조작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조작해서 기억할 수 있다. 무엇이 정말 진실인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은 알 수 없다. 책과 영화의 공통된 점은 모두 주인공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였던 남자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그의 기억법에 바탕에 영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진실을 알 수가 없다. 3개의 결말 모두 거짓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 우린 그저 그 살인자의 기억을 보고 있는 거니까. 그도 자신의 기억이 진실인지 모른다.
나는 책과 감독판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책과 영화를 읽고 보면서 주인공 살인자의 특성에 어울리는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일반판의 결말은 딱히 반전이랄게 없었다. 살인자였던 주인공의 악랄함이 조금 묻히는 결말인 것 같아 마음에 드는 결말이 아니였다. 또한 그의 성격이 묘사된 부분들과 다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주인공 살인자가 이런 대사를 한다. “네 기억을 믿지 마라.” (감독판에서)
감독이 결말을 다르게 하고, 일반판과 감독판의 결말도 다르게 한 것은 이 대사를 살리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진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감독의 의도가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