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야, 정신 좀 차려라.”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분명 설레라고 만든 로맨스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두근거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설렌다는 사람과 정말 불쾌하다는 사람 둘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전 여자친구와의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쓰는 예술 하는 남자, 도환. 그리고 그런 도환과 우연히 만나 도환에게 관심을 갖게 된 25살의 은하. 도환의 나이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은하의 나이를 듣고 아저씨라고 안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대충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3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기 때문에 개연성 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설레는 포인트인지 모르겠다. 그저 누군가의 판타지가 가득 담긴 영화가 아닐까? 도환은 처음 만난 은하의 모습을 몰래 사진 찍고, 영상 통화하다가 잠든 은하의 모습을 몰래 캡처한다. 이게 그 남자의 사랑을 드러내는 장면이었을까. 참고로 이 영화는 2017년도 영화이다. 그렇게 오래된 영화도 아니다.
도환은 영화가 끝나기 5분 전까지 자신의 마음을 은하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듯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정상적이라면 이 만남을 멈추던가 아니면 직접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텐데 도환은 그런 거 하나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 단 하루 연락이 되지 않자 은하를 찾아가 며칠을 잠수 탄 사람을 본 것처럼 화를 내고 윽박지른다. 그러고 이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도대체 뭘까. 영화에서 은하는 도환에게 도환의 시나리오는 너무 남자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도환의 입장에서만 쓴 게 아니냐고.
누군가의 로망과 판타지가 가득한 영화지만 한 가지 정말 좋았던 것은 엄태구와 이수경의 연기였다. 너무나 리얼하게 연기해서 마치 아는 사람의 연애를 두 눈으로 목격한 것 마냥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설렌 건지 모르겠지만 혼자 너무 설레하는 연기,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먼저 입을 여는 이수경의 연기는 정말 소름 돋게도 현실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처럼 찌질하고 무례한 모습이 남들에게 설레는 포인트라면 나는 아마 평생 설레는 마음을 못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