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고 있다. 습한 공기가 스멀스멀 땅에서부터, 하늘에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지금, 영화 <브로커> 소식도 들린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을 꼽자면 <마미>를 만든 자비에 돌란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닐까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번에도 역시 칸영화제의 가장 유력한 후보작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날씨와 멀지 않은 끈적하고 무더운 날들을 담고 있는 <태풍이 지나가고>가 떠올랐다.
평범한 일상에 태풍이 지나간다. 매년 여름, 태풍 역시 일반적인 하루에 불가하다. 주인공 ‘료타'의 일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아들과 어머니의 집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직 사랑하는 전처와 함께. 료타에게는 태풍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무서운 비바람에 갇힌 가족들은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한다. ‘미안해. 능력 없는 아들이라.’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료타에게는 세 가지의 후회가 있다. 아내를 힘들게 했다는 것,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유명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료타는 답한다.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료타는 아직 소설가가 되고 싶다. 좋은 아빠도 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신 태풍이 료타의 찌든 후회를 씻겨내준다. 태풍이 지나간 후의 맑은 하늘처럼 료타에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돈이 갑자기 생긴다든지, 전처와의 재결합 같은 것이 아닌 그저 ‘나 앞으로 괜찮을 것 같아. 열심히 살아볼게.’와 같은 새로운 발걸음이다. 태풍이 지나가기 전과 후 크게 변하는 것은 없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답게 잔잔한 물결이 그들의 삶을 다독이며 나아가게 한다. 이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만의 변화다. 만났던 자리에서 헤어지는 주인공들을 보자면, 나는 지나가는 행인1이 되어 그들이 한 달 후 다시 만났을 때는 어떤 하루를 보낼지 궁금해질 뿐이다. 부디 료타가 태풍이 지나간 후와 같길 바라면서.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제곡 ‘심호흡'의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