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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 대사도 없는 10여 분 남짓의 애니메이션이 93회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의 원제는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랑해요)>.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고로 사망한 아이가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다.

‘총기 사고 예방’이라는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영화가 택한 표현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러닝타임 내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연필로 그린 듯한 손그림만이 등장한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말없이 식사를 하는 부부. 그리고 그 위로 격렬한 말싸움을 하는 그들의 그림자. 영화에서 그림자는 등장인물의 영혼을 대변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우울과 공허, 고통과 슬픔을 보듬는다.

슬프고 지쳐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정적인 움직임에 비해 그들의 그림자는 동적이며 따뜻하다. 부모의 그림자는 아이가 남긴 흔적을 되돌아보게 하고, 아이의 그림자는 부모가 자식을 잃은 비극을 딛고 다시 서로 손잡을 수 있게 한다. 짧은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의 공허함과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대사 한 마디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영화는 슬픔을 이겨내는 힘은 사랑이며 비극 너머에도 희망이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관객들은 인식해야 한다. 미국 ‘총기 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사망한 17세 이하 어린이는 1373명에 달하고, 이중 0~11세 어린이는 299명이라고 한다. 실제로 ‘총괄 총기 규제 운동 단체 (Everytown for Gun Safety)’와 함께 한 이 영화는 총기 사건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관객들에게 인식시킨다. 그러니 영화를 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일이다. 슬픔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면, 기억은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