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걷거나 수업을 들을 때 마음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누구보다 번쩍 팔을 들 것 같다. <디태치먼트>에서도 모두가 손을 들었다. 선생인 헨리 바스를 포함해서. <디태치먼트>는 이 질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러니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아만 있다는 학교에서 한 달 동안 임시로 근무하게 된 헨리 바스. 영화는 그가 만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마음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시적으로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렇기에 유명한 영화들처럼 기승전결이 뛰어나거나, 흥미롭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디태치먼트>는 봐야 할 가치가 있는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헨리 바스와 주변 인물들의 서사 때문이었다. '우리 정말 삶이 힘들지 않아? 우울할 수밖에 없잖아.'라고 속삭이는 듯했기에 공감됐다. 학생들의 슬픔과 분노의 이미지, 마찬가지로 지친 어른들의 모습이 독특한 연출과 만나 마음 깊이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된 지금, 그때는 몰랐던 어떤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무관심(detachment)의 죄책감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도 힘드니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마음이 들며 주변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으니까. <디태치먼트>는 바로 이 점을 건드리고 있지 않나 싶다. 어른들의 세계는 우울함뿐이라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수도, 부모라는 역할을 할 만한 여유도 없게 된 세상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슬픈 그림자에 가려져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영화는 지금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악순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디태치먼트>를 보는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슬픔을 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학생들에게는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걸 잊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하죠.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것도요. 전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어요."
<디태치먼트>는 헨리의 삶과 인터뷰를 번갈아 보여주며,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알려준다. 위의 대사는 그가 인터뷰 초반에 말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헨리는 절망에 휩싸여 실패했다고 말한다. 따져보면, 영화 속에서 그는 실패했다. 아빠의 언어폭력과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던 메레디스를 지켜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걸 헨리의 실패라고는 볼 수 없다. 세상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분노는 어른 한 명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크다. 그럼에도 메레디스가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헨리 말고 다른 어른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우울에 잠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는 게 <디태치먼트>가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헨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삶을 살지만 주변에 관심을 주는 걸 잊지 않는다. 학생들을 지키는 게 우리의 의무라는 그의 말처럼, 어른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헨리가 메레디스를 구해내지는 못했다고 해서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또한, 헨리는 불완전한 어른이지만 충분히 본받을 사람이다. 나의 학창 시절에 이런 존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는 더 이상 학생은 아니지만, 헨리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며 그의 가르침 속에서 단단히 걷고 있다.
"어느 하나에 이러한 깊이를 느끼지 못했고 내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 - 알베르 카뮈
<디태치먼트>는 알베르 카뮈와 애드거 앨런 포의 문장을 인용하며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다. 그래서 나도 이들의 문장을 살짝 훔쳐 글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저녁 이슬의 그림자인 우리 친구들... 힘을 내기를. 그리고 기억했으면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그리고 이건 성장의 과정이야. 매년 달라질 거야.'**라는 헨리 바스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