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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60분. 12년을 찍은 영화. 수식어만으로도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하다.

12년 동안 매년 사흘 씩, 15분 분량을 촬영했다는 특이한 형식의 이 영화는 한 가족이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은 누나, 엄마와 함께 텍사스에 살며, 매주 이혼한 아빠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가 18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사소하거나, 또는 중대한 일들이 뒤섞인 그의 일기장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메이슨의 일상도 대부분 평온하다. 마치 지나간 어린 시절을 되짚어봤을 때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처럼, 이 영화는 그렇게 그의 12년을 보여준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전작 <비포> 시리즈 역시 9년 마다 한 번씩 촬영한 세 편의 시리즈이나, 그 내용은 <보이 후드>와 정반대다. <비포> 시리즈는 인생을 바꾼 중대한 선택의 순간, <보이 후드>는 자잘한 일상의 순간을 조명한다. <보이후드> 속 메이슨은 큰 고난을 계기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 먼지 같이 작은 하루 하루가 쌓여 오늘의 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한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은 잊혀진다. 이혼, 이사, 사랑 이별 등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로 한 줄기의 강물은 이루어진다. 평범한 날들이 모여 특별한 한 사람을 만들어내듯, 이 영화는 내 지난 날들도 결코 그저 그런 날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평범하고 지루한 이 인생을 ‘아름답다’고 말하기까지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그 다음 챕터에는 뭔가 더 있겠거니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겠지만 어쩌면 ‘별것’은 없는 게 인생일지 모른다.

사소한 오늘을 살며 수많은 외로운 순간을 견뎌낸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인생은 늘 도착과 출발의 연속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