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가은 감독이 좋다. 그가 가진 따뜻한 시선이, 분내 나는 영상과 눈물 나도록 알 것만 같은 화면 너머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20분 남짓의 단편 영화 <콩나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일곱 살 ‘보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제삿날에 필요한 콩나물을 사러 홀로 시장에 나선다. 물론 엄마는 반대했지만, 보리는 몰래 보물 상자 속 지갑을 꺼내들고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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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심부름길에 보리는 온갖 것들과 함께한다. 길 가던 강아지와 마주치기도, 이웃의 떨어진 빨래를 주워주기도, 문방구와 놀이터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막걸리를 들이키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한바탕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아이고 보리야, 콩나물은 언제 사러 가려고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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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첫 홀로 서기에 어떻게 즐거운 기억만 있으랴. 새로 사귄 친구와 다투고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난 보리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어느 이름 모를 할머니 집에서 상처를 치료받는다. 그렇게 귀여운 보리의 심부름 일대기를 함께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어느 곳까지 따라가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콩나물 구하기 여정의 하이라이트.

나는 어린 여자아이 혼자 심부름을 보냈을 때 지켜보는 입장으로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을 완벽하게 배신해주는, 전혀 유해하지 않은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윤가은 감독의 시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