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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길, 이름은 복순. 언제나 갖춰 입는 정장에, 구두에, 자비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치고 정감 있는 이름이다. 길복순 역의 전도연을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써 내려간 시나리오답게 ‘복순’이라는 이름은 전도연의 어머니 존함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즉, 이 영화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중간 그리고 끝까지 모두 전도연을 위한 칼춤이다. 그렇게 나는 이 아름다운 춤사위에 베인 채 지옥을 허덕이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예전보다 더 전도연을, 그리고 길복순을 사랑하게 되었다.

싱글맘이자 킬러라는 직업적 이중성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은 당연하고 나는 전도연이 만든 길복순만의 톤이 너무나도 좋았다. 깔끔하게 내뱉는 대사와 길복순스러운 액션은 내가 결국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겠구나 직감하게 만들었다. 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편인데도 이런 다짐을 한 걸 보면 제 발로 지옥에 들어온 게 분명하다.

“어떤 게 너에게 지옥일까 생각해 봤어.”

설경구가 연기한 차민규가 길복순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길복순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지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로 인해 전도연, 이연, 이솜, 김시아 배우에게 빠져버린 것과 변성현 감독의 재능이 매우 질투 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길복순은 내게 지옥이 되었다.

길복순을 보고 변성현 감독의 작품이 로맨스 맛집이라는 점에 동의하게 되었다. 어쩌면 <불한당> 때부터 변성현 감독이 말하는 사랑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불한당>에서는 짝사랑의 긴장감을 보여줬다면, 길복순은 희생적 사랑을 표현한다. 아주 다양한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은 무엇일까? 반대로 나의 약점을, 나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존재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럼에도 끝내 취약한 모습이 드러나고야 마는 순간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짓는 나의 표정은 아마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음일 것이다. 길복순에서 보여주는 변성현의 사랑은 (모성애를 제외하고) 이만큼 순진하다. 비록 배경은 피로 물들어 있어도… 영화를 보면 붉은빛의 진한 사랑은 지옥이라는 걸 단번에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