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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MTV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앞에 SBS가 붙는 게 아니라 그냥 MTV였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미국 MTV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번역해서 내보냈다. ‘MTV Push’는 그 시절의 나를 팝척척박사로 만들었고 많은 MTV 프로그램들이 미국에 대한 나의 환상을 키웠다. 그중 하나가 MTV가 만든 하이틴 드라마였다. MTV는 음악뿐만 아니라 하이틴 드라마 맛집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페이킹 잇>은 MTV가 만든 하이틴 드라마이다.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이 드라마가 티빙과 파라마운트의 계약 덕분에 다시금 찾아왔다. 다시 보니 문제점들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하이틴 드라마 특유의 가벼움과 거침없는 모습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순간이 필요하다. 조용히 학교를 다니던 레즈비언 커플이 프롬퀸이 되는 과정을 그린 <페이킹 잇> 같이.

하지만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두 사람은 레즈비언이 아니며 그저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서로를 제외하고는 전혀 친구가 없던 두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에이미와 카르마의 사이를 동급생들이 오해하는 바람에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 내 가장 유명한 학생의 파티에도 초대되며, 프롬퀸 후보에도 오른다. 그저 이 둘이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에이미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카르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유명세에 카르마는 더욱 평범해지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한다. 카르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에이미는 그를 위해 레즈비언인 척을 계속하기로 약속한다. 첫 화부터 카르마를 향한 에이미의 마음은 뚜렷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쌍방이 되는지 아닌지는 스포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페이킹 잇>을 아끼는 두 번째 이유는 출연 배우 때문이다. 카르마를 연기한 케이티 스티븐스는 과거 콘샐러드를 통해 소개했던 <더 볼드 타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페이킹 잇>으로 처음 그를 만났기에 <더 볼드 타입>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무척 반가웠다. 한 고등학생이 잘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된 모습을 보는 것 같달까. 케이티 스티븐스가 맡은 주연은 이 두 작품뿐인지라 그가 만드는 세상을 더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의 캐릭터는 언제나 강단이 있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우정에 진심이다. 이런 점이 늘 알 수 없는 편안함으로 이끈다. 만약 <페이킹 잇>이 재밌었다면, 혹은 <더 볼드 타입>을 이미 알고 있다면 케이티 스티븐스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보는 것도 즐거울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