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같이 돌아가는 일상. 분명 어제까지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거기에서 생각을 멈추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이 세상에 바뀌는 게 있을까?’

영화의 제목 ‘Nimic’은 루마니아어로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과 ‘아무것(anything)’을 모두 지칭하는 명사이다. 좋아하는 것의 반대는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의 반대말이 아무것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상황은 면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된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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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이자 첼리스트인 남자는 지하철에서 의문의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지하철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자의 모든 것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기어코 여자는 남자의 집 안까지 따라 들어오고 자신이 이 집의 가장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이 집의 가장이자 남편인 남자는 가족들에게 여자를 어떻게 좀 해보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황당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알아?’라는 말뿐이다. 그렇게 그 여자는 남자를 대신한다. 부인 옆에 자는 사람도, 아침에 눈 떠 부엌에서 계란을 먹는 사람도 여자로 바뀌었지만 그런 여자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여자가 유일하게 남자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첼로 실력이다. 여자의 첼로 소리만 듣는다면 기괴하고 엉망진창이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연주한다면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그냥 어제와 같은 날처럼 그렇게 하루는 지나가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남자는 지워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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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하나하나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역할은 대체될 수 있지만 나라는 존재마저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영화 속 여자가 남자의 모든 것을 대신했지만 첼로 실력마저 똑같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 아픈 주제이다. 하지만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참 동안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이 마냥 불쾌한 것은 아니다. 1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삶을 살아갈 나에게 있어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를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p.s. 대신 아침에는 보지는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