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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은 강간, 폭행, 고문 등과 같은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당신은 이제부터 길리아드의 국민이며, 앞으로 이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오늘날, 출생률이 0을 찍고 임신이 불가한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여성들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니 앞으로 여성은 글을 읽어서도, 사회적 지위를 가져서도 아니 된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 중, 과거 성경에 반하는 행동을 한 자는 시녀로 일하며 이 나라를 위한 아이를 잉태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길리아드의 영광이니라. 당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수였든, 의사였든 여성들은 집안일과 아이를 위해서만 쓰임을 다 해야 한다. 길리아드 국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며, 따랐을 시에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쾌락을 즐겨도 괜찮다. 외도를 해도 상관없으며 강간을 해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이 메마르고 아이가 탄생하지 못하는 건, 모두 여자들의 탓이니.

그러나 여성들이여,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절대 짓밟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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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즈 테일> 속 세계관은 위와 같다. 미국 내 반란군이 생겨나고 미국은 결국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세워진 나라, 길리아드. 여성들은 고위 간부의 아내, 집안일을 하는 하녀, 그리고 오로지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 쓰이는 시녀로 나뉜다. 이름마저 오브ㅇㅇ으로 바뀌는 시녀들. 직역하면 고위 간부의 소유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름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시녀들은 매달 강간을 당한다. 길리아드는 이를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말하지만, 강간이다. 그렇게 아이를 출산해도 아이를 볼 수 없다. 내 배 아파 낳은 아이지만, 집안 주인의 자식이 된다. 시녀는 오로지 임신을 위해서만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주인공 준은 시녀이다. 그렇다. <핸드메이즈 테일>은 시녀의 이야기다.

<핸드메이즈 테일>의 원작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이다. 시즌 1까지는 ‘시녀이야기'와 흐름이 똑같이 흐르지만, 시즌 2부터는 새롭게 창작되었다. 마가렛 애트우드가 해당 작품을 쓴 건, 1980년대였다. 하지만 왜 이 작품이 여성 인권이 높다고 말해지는 시기에 드라마화가 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에서 <핸드메이즈 테일>이 만들어진 시기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온 직후였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가 트럼프 정권에 의해 여성인권이 불안정해진 상황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는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심지어 미국이 아니라 길리아드라는 새로운 나라가 바탕이 된다. 설정만 봐도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며 공감을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트럼프가 없는 대한민국 사람인 우리에게는 <핸드메이즈 테일>이 그저 가상의 이야기로만 다가오게 될까?

시즌 4까지 모두 시청한 나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가장 잘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척 숨겨왔던 불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핸드메이즈 테일>을 꼭 시청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머뭇거려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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