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이고 유쾌한 아내 니콜과 세심하고 가정적인 남편 찰리. 신인 배우로서 보장된 삶보다 남편과 함께하는 연극을 선택해 뉴욕으로 올 정도로 헌신적인 사이기도 했던 이 둘은 이혼 절차 중이다.
결혼 이후 찰리는 니콜의 전폭적인 지지로 연극 감독으로서 점차 성장한다. 모두 당신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니콜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게 분명하다. 니콜은 본인의 삶에서 점점 자신이 지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결혼의 이유는 사랑해서 라지만 이혼의 이유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익숙해지면 이기적이기 십상이다. 서로가 익숙했던 이들은 이혼 과정에서야 비로소 결혼 생활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모른 척했던 진실을 마주한다. 털어놓기엔 소심해 보여서 꾹 참았던 말이나, 출산과 육아 사이에서 포기해야 했던 커리어 같은 것들 말이다. 기울어진 사회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이혼은커녕 결혼도 안 해본 내가 본 영화 <결혼 이야기>는 그렇다.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되길 약속하고, 새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우리는 너무 어리석다.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니콜도, 부랴부랴 소송을 준비했던 찰리도 그랬다. 꾹꾹 참다가 매일 아침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막말을 내뱉고, 서로 가장 잘 아는 부분을 깎아내리면서 이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보다 상대에게 별로인 사람이라는걸. 그렇지만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결혼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무의식중에 인사를 키스로 대신하거나, 아들이 화장실 가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눈다. 모든 게 정리된 이후에도 처음 만난 날의 기록을 보며 눈물 흘리기도 하고, 풀린 신발 끈을 묶어주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는데 하물며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사람과의 관계는 어떨까. 결혼이라는 과정에서 사랑은 의외로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