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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가재의 특성은 연한 살이 단단한 갑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과 몸의 한 부분이 잘려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재는 습지에서 산다. 사람의 손길이 쉽게 닫지 않는 습지의 깊숙한 곳, 영화는 그 공간을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어떤 생명체보다도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가재는 그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 주인공 카야처럼.

태어나 자란 곳 그리고 가족. 나의 주위를 둘러싼 존재가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 누군가는 자연과 함께 자랐고 누군가는 도시와 자랐다. 주인공 카야에게는 습지가 정체성이다. 기대했던 분위기와는 달라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카야의 움직임이었다. ‘카야는 습지에 사는 한 동물이다.’ 내가 해석한 주인공의 캐릭터성은 이러하다. 카야는 습지에 살고 있는 ‘인간’이 아닌, 동물 같은 행동을 한다. 영화는 카야가 어떻게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인간이 아닌 자연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을 어떻게 동물적으로 쓰는지 보여준다. 그렇기에 (나의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영화가 담은 많은 메시지 중 사람은 자연에 속해있는 존재라는 이야기가 내게는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인간은 꽤나 자연을 거스르고 사느라 피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카야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남겨졌다. 글을 읽을 줄도, 덧셈을 할 줄도 모르는 작은 어린아이는 배운 게 홍합을 따는 것뿐이라서 홍합을 따다 생계를 유지한다. 습지 안, 덩그러니 존재하는 카야의 집. 카야를 이루는 건 습지뿐이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있다. 카야의 친구는 새들이다. 사람보다는 새의 언어가 익숙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동물이 포식자를 피해 숨듯 움직이는 모습은 카야가 습지에 사는 아름다운 동물 같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가재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갑각류들에게 물리면 당신의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과 온갖 기분 나쁜 남자들의 행동이 연속된다.(체이스 ㅂㄷㅂㄷ…🤬) 카야는 자신에게 찾아온 시련들을 동물처럼 해결한다. 조심스러운 움직임, 숨을 곳을 정확히 아는 감각, 본능적인 행동들로 카야는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의 습성은 왜인지 자연과 도시의 중간, 그 애매한 지점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너한테는 습지 같은 공간이 없지?’라며 놀려대는 것 같다. 그냥 카야가 부럽다는 말이다. 물론, 카야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겪고 싶지 않다. 내게는 그만큼 단단한 갑옷이 없으니. 그러니 나는 영화를 보며 선택적으로 카야가 되어보고, 영화의 반전에 놀라 할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꼭 직접 확인해 보길 바라며, 바쁜 도시의 삶 속 자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