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스웨덴에는 춤 추자고 제안하는 파트너가 없는 댄스파티에서 분노의 독무를 추고, 어느 여성 작가를 보고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시골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선 어렴풋이 빨간 양 갈래머리의 누군가가 보인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책 <말괄량이 삐삐>.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저자이자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어린이 평등권을 주장한 아동인권 운동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과 결정적 순간의 이야기다. 그의 인생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동화 작가, 그보다 더 많은 수식어를 필요로 한다.
1920년대 유럽, 감자밭밖에 없는 동네에서 여성 저널리스트가 된 소녀는 10대 비혼모로서 아이를 낳았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과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아이가 다섯살이 될 때까지 생이별을 해야 했으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소녀의 이야기를 써 편견에 맞선 세계적인 아동문학 작가가 되었다. 비혼모, 출산, 낙태는 현재에도 민감한 이슈다. 약 백 년 전의 아스트리드는 이토록 작고 외로웠기 때문에 더 작고 외로운 존재들에게 삐삐를 선물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남자 애 같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은 말이지만, 아이의 자의식은 어른과 달리 아주 말랑해서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곤 한다. 그때 아스트리드는 나에게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보다 훨씬 말괄량이에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주근깨 투성이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당당했고 단단했다.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방’을 얻기란 버지니아 울프의 1920년대에도, 아스트리드와 삐삐의 1940년대에도, 나의 2022년에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스트리드는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찾을 것을 권유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유쾌한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용감하게 뛰어올라 자기만의 인생을 살던 삐삐가 누구보다 사려 깊은 어른이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삐삐’처럼 내 목소리를 내고,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며,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외롭고 배고파도 맞서 싸우는 용감한 소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