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연기 지망생인 은희는 현실도 연극이다. 나쁜 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상대를 대하는 그 순간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상관없지 않은가? 지금 만나는 남자 현오에게 바람피웠던 과거를 거짓말했다. 전에 잠깐 만났던 남자 운철에게는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겼다. 그렇게 작은 거짓말을 쌓다가 ‘오늘’ 두 남자들과 은희가 한데 모인다. 그렇게 은희의 가면은 벗겨진다.
은희는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다. 딱히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상황들이 한데 모여 자신을 힘들게 해서 짜증 난다. 하지만 현, 전 남자친구의 행동을 보면 은희가 딱히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들 사람과 상황에 맞는 연기로 여러 컨셉을 가지고 살지 않나? 은희도 현오도 운철도 솔직하진 않아 보인다.
거짓말을 일삼는 은희는 오늘 처음 본 일본 작가 료헤이에게는 거짓말을 못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영어도 드문드문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거짓말을 하기 어려워 사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컨셉을 만들어 행동하지만 영어로는 은희 자신을 꾸며 연기하기가 힘들다. 둘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묘하게 대화가 잘 이어지고 부드러운 상황이 계속된다.
은희는 ‘최악인 하루’였던 시작과 끝을 료헤이와 함께 했다. 현, 전 남자친구와 다르게 료헤이는 잘 통하지 않는 언어의 이야기에 경청한다. 위로의 말도 건넨다. 우연히 아침에 만나서 편안함을 주는 료헤이와 그 이후에 만난 자기애가 강하거나 집착하는 이름만 (현재, 과거) 남자친구인 그들은 비교가 된다. 그렇기에 다시 그 하루의 끝에 료헤이를 만났을 때 은희는 편해 보였다.
은희와 료헤이는 주위 소음이 없는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나긋하게 느릿하게 이어지는 솔직한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왠지 모르게 평온한 분위기에 망한 하루가 흐릿해진다. 최악의 하루 끝 어둠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냥 거짓말투성이인 하루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드는 요즘,
최악의 하루지만 그 하루 끝에서 전하는 뜻밖의 위로라는 선물을 받아 갈 수 있는 영화 <최악의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