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처음으로 혼자 해낸 일이 무엇일까 떠올려 보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일은 ‘엄마의 도움 없이 양치하기’이다. 몇십 년이 더 된 일이지만 그날 혼자 양치를 했다는 게 너무 기쁘고 신나서 어린이집 차를 타 기사님부터 유치원 선생님에게까지 칭찬을 듣기 위해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이런 추억을 떠올린 이유는 넷플릭스의 <나의 첫 심부름> 때문이다. 이 예능은 일본에서 1991년부터 비정기적으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인생 첫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다 큰 우리에게는 정말 간단한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이고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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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은 회차는 8화다. 다른 회차와 다르게 인생 5년 차 소타는 내가 봐도 ‘저 어린 애가 저런 심부름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심부름을 하게 된다. 밤낚시가 취미인 아빠가 잡아온 생선을 생선가게에 가서 회를 떠와야 하고 그다음에는 마트에 들러 소타보다 더 아기인 동생이 먹을 사과와 분유를 사 와야 한다. 소타는 자신의 상체만 한 생선이 들어 있는 아이스박스를 둘러매고 집을 떠난다. 가던 도중 내리막길에서 소타의 어깨에 묶여있던 아이스박스의 끈이 끊어지게 되고 아이스박스 밖으로 징그럽게 생긴 생선들이 다 탈출하게 된다. 엄마에게 부탁하고 싶은 그 순간 주위에 있던 고양이가 생선을 노리는 것을 발견하고 위기감을 느낀 소타는 눈을 질끈 감고 미끌미끌한 생선을 잡아 아이스박스에 넣고 이웃 주민의 도움을 받아 아이스박스 끈을 다시 묶는다. 겨우 챙기고 생선가게에 가던 도중 아이스박스는 한 번 더 끊어지지만 한 번 이겨낸 시련이라서 그런지 꿋꿋하게 생선을 잡아넣고 생선가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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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소타에게는 더 큰 시련이 온다. 동생의 분유를 사러 가서 엄마가 부탁한 사이즈보다 더 큰 분유를 사버렸고 사과와 분유, 회를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던 도중 봉지를 놓쳐 사과가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과를 다시 주워 오르막길 꼭대기로 올라갔지만 한 번 더 사과를 놓쳐버렸다. 보는 내가 다 포기 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사과를 가지러 내려간 소타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오르막길에서 사과를 놓친 소타를 보고 차에서 내려 사과를 받아줬다. 이렇게 소타의 노력과 어른들의 도움으로 심부름을 마친 소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며 손에 땀을 쥐게 했던 20분가량의 영상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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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타의 심부름은 소타의 노력도 있지만 곁에서 응원해 주던 이웃집 아저씨, 생선가게 사장님 등의 격려와 작은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렇다. 물을 여기저기 튀기며 양치하던 나에게 엄마가 해준 응원과 선생님의 칭찬으로 나는 내일도 모레도 혼자 양치를 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쌓여 지금은 이렇게 커서 양치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됐다.

아이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어른 없이 아이는 혼자 자랄 수 없고 어른도 그런 아이였던 시절을 겪고 결국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자신이 태어나기를 어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근 몇 년간 ‘노키즈존’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아이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이유는 아이가 다칠까 봐 혹은 다른 손님들이 불쾌해 해서이다. 그렇다고 가게 문 앞에 크게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가게 SNS에 혹은 가게에 영어로 적어둔 곳이 대부분이다.

한 예능에서 아이가 아빠와 함께 카페에 가 혼자 메뉴를 주문하는 영상이 화제였다. 우리는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카페에서 귀엽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조회 수가 몇십만 뷰가 넘을 정도로 좋아하면서 대부분의 카페는 노키즈존이라 아이들에게 주문을 할 기회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나의 첫 심부름>에 나오는 모든 어른들을 아이를 거부하지 않고 응원하고 배려하며 아이가 혼자 도전하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 누구도 아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는 이렇게 크는 것이다. 한번 생선 가게를 가봐야 다음에도 생선 가게를 갈 수 있고 카페에서 주문을 해봐야 주문을 할 수 있는 아이로 게 된다. 단지 아직 서투니까 울어서 시끄러우니까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어른의 이기적인 행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 말처럼 똑같은 가치를 가진 아이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드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