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칸영화제에서만 두 번의 황금종려상과 세 번의 심사위원 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 된 켄 로치. 그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 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내를 잃고 홀로 남은 다니엘이 심장마비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나라에서 지급하는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를 다루며, 사회에서 쉽게 소외당할 수 있는 노인들의 가난한 삶을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낸 영화라고 소개했다. 공교롭게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 또한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각각 프랑스의 할머니와 영국의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일하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허울뿐인 복지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 다른 나라의 일일뿐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가까이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다니엘이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약자의 상황과 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국가 복지의 시스템과, 기계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로 인해 다니엘은 복지 수당 지급 절차를 밟으며 몇 번이나 난관에 부딪힌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희망을 짓밟는 시스템과, 반복되는 좌절로 인해 ‘늪에 빠진 기분’이라며 눈물로 하소연하는 케이티의 모습은 가슴을 답답하게 죄여온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나는 세상의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명확한 깨달음을 얻는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 작지만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런 마음들이 모여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진다면, 영화는 ‘황금종려상’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