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6295.PNG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본다면, 나는 앨리스 먼로와 레이먼드 카버를 말할 것이다.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 그 안에 숨겨진 위태로움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의 이야기와 같은 남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속 깊이 자리한다. 소설가 집안의 한 계절을 다룬 <스턱 인 러브>는 두 작가의 소설 같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윌리엄’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레이먼드 카버를 말하기도 하니, 이 영화가 미니멀리즘 소설과 닮은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즉, <스턱 인 러브>는 한 편의 소설 같다.

I remember that it hurt. Looking at her hurt.

영화는 아들 ‘러스티’가 직접 쓴 시로 시작한다. 좋아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시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스턱 인 러브>는 한 가족이 각자 어떤 사랑을 하며,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한다. 이 네 가지 양상 중 분명 자신과 닮은 사랑도 숨어 있을 것이다.

먼저 이 가족의 아빠인 ‘윌리엄’은 이혼한 아내 ‘에리카’를 잊지 못한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명절 때마다 에리카의 자리도 셋팅해둔다. 재혼한 에리카 의 집을 염탐하기도 한다. 그는 에리카와 에리카의 현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익숙한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라고 서술한다. 윌리엄의 많이 찌질한 행보는 코미디다. 아내가 돌아왔으면 하는데도 다른 여자와 몸을 나누니 개그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딸 ’샘‘은 사랑을 믿지 못한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 사유 때문이다. 가장 믿었던 엄마의 외도를 목격한 후, 샘은 세상에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하룻밤 즐기면 끝인, 마음을 절대 섞지 않은 관계만 유지한다. 그러다 사랑을 믿고 진심으로 샘을 좋아하는 ‘루이’를 만나게 된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고, 사랑 때문에 상처받기 싫은 샘의 닫혔던 마음은 점차 열린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거야’라는 진심 어린 확신은 엘리엇 스미스의 between the bars 노래와 함께 샘의 상처를 아물게 한다. 비가 내리는 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듣는 장면을 본다면 나도 사랑에 데인 아픔 따위는 뒤로 한 채 다시 누군가를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들 ‘러스티’의 사랑은 위태로우면서 막내답게 순수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의 날것. 러스티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온몸으로 사랑을 말한다. ‘케이트’를 향한 다소 과감한 그의 행동과는 달리 시는 짧고 담백한 걸 보면, 얼마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는지… 문장마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내게는 네 명의 모습 중 가장 닮고 싶은 사랑의 형태였다. 다시는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엄마 ‘에리카‘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현 남편 혹은 전 남편을 향한 사랑보다도 딸 ‘샘’이 자신을 용서해 주고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란다. 에리카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답답할지도 모르겠다는 게 스포아닌 스포다.

영화는 결국 추수감사절에는 공백이었던 에리카의 자리가 크리스마스에는 다시 채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가족 구성원의 옆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지를 향해 달려간다. 바다가 보이는 공허한 집안, 가족들 모두 사랑으로부터 상처받았던 마음을 위로받고 행복하게 함께 하는지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나의 과거와 현재도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의 그 아픔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더라도 다음에 올 사랑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길 바라며, 이 영화가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남은 연말과 새로 시작할 새해에는 사랑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