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머리가 없이 태어난다면, 외모에 대한 선호나 차별은 사라질까? 이 남자가 사는 곳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머리가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모양의 머리를 사서 달고 다닌다. 머리는 꽤나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원하는 얼굴로 마음껏 갈아끼울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이 남자는 머리를 살 만큼 여유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위해 머리를 파는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머리들을 착용해 본다. 그는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를 찾았음에도 결국 머리가 없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기로 한다.
남자는 사랑에 성공했을까?
낭만적이게도 그렇다. 이 남자에게서 여자는 진심을 보았기 때문일 거다. 얼굴이 없으니 표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대사조차 몇 줄 없는 이 남자,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어떻게 진심을 느낄 수 있었을까?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얼굴과 표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를 수없이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 또한 그것들이었다. 모두 그럴듯하게 자신을 꾸미고 살아가지만 결국 통하는 것은 진심이다. 상대를 만나러 가기 전 숨길 수 없는 손의 떨림이나, 춤추지 않고 배겨내지 못할 설렘, 혹은 두근대는 심장 같은 것들 말이다. 18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속 한순간도 끊기지 않는 연주곡처럼 당신의 모든 것을 내보여도 좋을 것들이, 투명하게 사랑할 수 있는 순간들이 일상 속에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