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번가의 연인>의 원제는 <채링크로스 84번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채링 크로스 84번지는 과거 중고 서점 ‘마크스’가 있던 곳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작가 헬렌 한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뉴욕에 사는 헬렌 한프가 고전 서적을 구하기 위해 런던 채링 크로스 84번가의 중고 서점 ‘마크스’에 편지를 하며 시작된다. 1920년대의 뉴욕과 런던, 중고책과 편지. 영화라 해도 지나치게 로맨틱한 소재인데 이 이야기가 작가의 실화라니,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원작 소설 또한 한국에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원작의 제목을 그래도 살려 <채링크로스 84번지>로 번역되었다. 영화 또한 원제를 그대로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냐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기에는 좀 더 깊고 입체적이니까.
중고책을 구하기 위해 런던으로 부쳤던 헬렌의 편지는 그곳의 서점 직원 프랭크와 약 20년 동안 이어진다. 긴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책에 대한 서로의 감상평을 주고받기도 하고, 헬렌은 전쟁 후 식량 부족으로 배급제를 실시한 영국의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식량을 보내주기도 한다.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시작된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편지가 쌓이듯 고스란히 쌓인다.
남녀가 주고받는 친밀한 감정들을 모두 사랑으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납작한 시선일듯싶다. 헬렌과 프랭크가 무려 20년 동안이나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것은, 사랑뿐 아니라 우정과 이해, 희망과 연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