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5852C-C7CE-4946-80A8-8F6C504A438C.jpeg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그로 인해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국왕을 잃었다는 슬픈 소식보다, 찰스 왕세자의 즉위식보다 다이애나비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 이유를 대부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모른다면, 혹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스펜서>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스펜서'는 다이애나비의 성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다이애나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감독은 남편의 부끄럼 없는 불륜과 숨소리마저 통제되는 억압 속, 살아남으려 애쓰는 여성의 불안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진주 목걸이를 씹어먹는 것과 같은 영화적 이미지를 만들어 다이애나의 시린 감정을 우리에게까지 다가오게 한다.

영화에서 다이애나는 첫 대사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길을 잃었기에 묻는 말이지만, 중의적으로 자아 또한 사라졌다고 해석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애나의 목적지는 자신이 원래 가족들과 살았던 집, 그 옆에 있는 왕실 별장이다.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이애나는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들판과 그곳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발견한다. 허수아비가 입은 아버지의 옛 옷도 함께. 자아가 가득했던 공간과 자아를 없애버린 공간이 나란히 존재하는 곳에서 다이애나는 3일 동안 견뎌야 했다.

집에 갈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파파라치들이 사방에 깔려 있어요.

다이애나는 추억이 깃든 옛집에 갈 수 없었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아니라 왕실의 소유품 중 하나였을 뿐이기에 자신의 뜻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다이애나에게 허락된 일은 상황에 맞게 준비된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크리스마스 연휴 3일의 시간 동안 살을 찌우는 것뿐이었다. 남편 찰스가 선물했다는 진주 목걸이도 착용해야 했다. 내연녀의 목에도 걸려있는 똑같은 디자인의 진주 목걸이를 다이애나도 건 채 앞으로 걸어간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런 다이애나의 심리를 과장되지만 세세하게 표현한다. 만찬을 가지는 자리에서 진주 목걸이를 뜯는 다이애나. 진주가 수프 속으로 들어가고 수프 건더기를 먹는 것 마냥 다이애나는 그것을 고통스럽게 씹어 먹는다. 그리고 구토를 한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다이애나의 상상이었다-로 끝나지만, 다이애나의 울분 가득한 감정은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 길로 다이애나는 무너져가는 옛집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2시간의 긴 러닝타임 내내 외부의 압박으로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를 다시 간절히 찾고 싶은 사람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다이애나는 이혼 후 다이애나 스펜서로서 살 수 있었을까?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 3일간의 크리스마스 연휴로 인해 다이애나는 이혼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그 끝이 죽음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한 시대가 저문 지금까지도 다이애나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