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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들은 영화관을 나서면서 보기 전과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비로소 시작되는 영화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물으면 답하기 쉬운 반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음식 따위를 고르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 영화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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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일주일 간 머무르게 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이곳. 죽은 사람들은 사흘 동안 이곳에서 의자에 앉아 생전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직원들은 선택받은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죽은 자는 그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한 시간으로 간다. 기억 선정에 신중해야 하는 까닭은 선택한 것 외의 기억은 모두 잊게 되기 때문이다.

기억할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것은 잊어버릴 나머지를 고른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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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 속 감동적인 일화를 꼽는 사람도, 어느 날 문득 바라본 하늘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전 조사차 600명가량의 사람들에게 실제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실제 영화에 삽입되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자기 자신을 연기한 셈이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설명하는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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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특별한 줄거리는 없다. 어느 사람들의 인생과 행복했던 기억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또 기억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도 헤아려볼 수 있다. 우리의 별일 없는 일상은 대부분 볼품없다.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불쾌하고, 무기력하다. 그렇기에 사고처럼 찾아오는 일탈이 반가울 것이다.

당신도 이 영화를 통해 의자에 앉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 더 나아가 앞으로 행복할 순간, 그리고 선택과 책임에 대한 태도까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