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LGBTQ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캐롤>을 꼽을 것이다. 사실 <캐롤>은 내가 본 거의 유일한 퀴어 영화일 수도 있다. 혹은,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아는 것이 많거나 본 것이 많아야 글을 쓸 텐데 잘 모르는 내가 섣불리 글을 썼다가 괜히 거짓으로 아는 체만 하는 글을 쓰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퀴어 영화를 향한 바로 그 시선을 싫어한다. 성소수자를 다루는 영화들은 항상 영상미가 훌륭하고, 기승전결이 완벽하며, 사회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싫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가 모두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은 상업 영화여도 괜찮은 것처럼,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 또한 대-단히 무겁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쓰려는 <반쪽의 이야기>가 영상미가 형편없고 만듦새가 부족하며, 중요한 교훈도 없는 영화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감독의 애정과 노력, 세심함이 곳곳에서 영화 곳곳에서 티가 나며, 중간중간 인용된 사랑에 관한 문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여느 하이틴 무비와 다를 것 없이 그저 ‘밥 먹으면서 이 영화나 볼까?’할 만큼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귀엽고 친근한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조용하고 똑똑한 중국계 모범생 ‘앨리 추’.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직자가 된 아빠와 단둘이 살면서 용돈벌이를 위해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앨리에게 미식축구 선수 ‘폴'이 예쁘고 똑똑한 ‘애스터'에게 쓸 연애편지 대필을 요청한다. 편지는 사적이고 진실된 것이라며 몇 번이나 거절하지만, 50불이 없어 당장 전기가 끊기게 생긴 집안 사정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요청을 수락한다. 편지로 엮인 세 사람의 관계는 아슬아슬할 것 같다가도 귀엽고, 위태로워 보이다가도 사랑스럽다.
영화를 보다 보면 폴이 좋아하는 사람이 애스터인지 앨리인지, 앨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애스터인지 폴인지, 애스터는 과연 어떤 마음인지 혼란스럽다. 영화는 그렇게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마음을 공평하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다루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영화를 보는 우리 또한 그들의 복잡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복잡하게 스며들게 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하나다.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며 대담한 것이며, 훌륭한 걸 그릴 기회를 위해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것’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괜찮은 나의 인생과 나의 사랑을 위해, 앨리와 애스터, 폴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껏 그린 그림에 대담한 선 하나를 더 그려 넣는 방법을 배운다. 여느 하이틴 영화가 그렇듯, 주인공들은 사랑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갈 용기를 얻고, 한 뼘 더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