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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살아내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 바꿔 말하면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내게 주어진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된다면, 나는 의연할 수 있을까.

갑상선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헤이즐은 자신이 죽고 나서 남겨진 이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 말한다. 골육종으로 다리 하나를 잘라내야 했던 어거스터스는 죽음 후 사람들의 망각을 두려움으로 꼽는다. 죽음을 인식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을 가진 그들은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 끝에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한정된 삶일지라도, 영원히 남아 기억되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참 괜찮은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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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터스의 장례식에서 읽을 추도사에 헤이즐은 이렇게 적는다.

“넌 내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함을 줬어. 그런 네게 난 영원토록 고마워할 거야.”

끝이 정해진 삶일지라도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무한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말한다. 어떤 무한함은 다른 무한함보다 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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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합쳐 다리 3개, 쓸만한 폐는 1.5개.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각자의 시간. 남들보다 조금 작은 숫자와 적은 무한함을 가진 그들의 삶은, 서로가 있었기에 오케이다. 상처받는 걸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 상처받을 지는 직접 선택했던 그들의 용기 또한, 오케이다.